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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정치·사람] 외국의 지역정당 사례(202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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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501회 작성일 22-06-03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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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지역정당 사례

 

윤현식 _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국가가 법으로 정당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시시콜콜하게 규제하는 체제는 실은 그리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 국가는 정당에 대한 법적 규제를 최대한 자제하는 태도를 취한다. 앞서도 살펴봤지만, 우리의 정당법은 비교법적으로도 상당히 돌출적인 특색을 가지고 있다. 중앙당은 서울에만 둬야 한다든지, 정당의 최전선이자 최말단 조직인 지구당을 둘 수 없도록 한다든지, 5개 광역시에 각 1천 명 이상 당원이 있어야 한다든지, 입당 연령을 제한한다든지 하는 규정들을 법으로 못 박은 예는 거의 없다. 중앙당을 서울에 두든 대전에 두든, 지구당을 두든 말든, 10살에 입당하든 환갑에 입당하든 그걸 국가가 이래라저래라 꼼꼼하게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어쨌든 한국은 정당법이 이렇게 만들어져 있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지역정당이 등장할 계제가 없었다.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 운운했지만 정작 그 핵심이 되어야 할 지역정치와 지역정당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은 흘러왔고, 그러다 보니 지역정당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새롭고 희한하다. 그게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귀찮게 그걸 왜 하는데? 등등의 질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처음처럼 제기된다. 당헌·당규로 충분할 내용을 국가가 법으로 정해놓은 나라의 현실이 이렇다.

그렇다면 외국은 어떠한가? 우리의 정당법처럼 온갖 규제를 다 법제화해놓지 않은 나라들에서는 지역정당이 잘 운영되고 있을까? 유럽 각국은 다양한 지역정당들의 활동을 보장한다. 프랑스나 루마니아처럼 지역정당이라고 할만한 정당이 없는 나라도 있지만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처럼 지방선거에서 20% 득표율을 올리는 지역정당을 가진 나라들이 있다. 영국이나 핀란드, 스웨덴 같은 나라들에서는 지역정당이 고전하고 있긴 하지만.

지역정당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나라가 독일이다. 연방제라는 특수성에서도 기인하지만, 독일에서 지역정당은 전국정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현실적 지방분권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독일의 지역정당은 지방정부 및 지방의회 수준에서 주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2008년 바이에른 선거에서 처음으로 주(州) 의회 선거에서 지역정당이 의석을 획득함으로써 정치적 범위를 확대할 여지를 보여주었다. 지역정당의 선거연합이 보장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일의 지역정당은 정당법으로 규율되지 않고 지방선거에만 참여하여 후보를 내는 정치적 결사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독일헌법 제9조의 결사의 자유에 따른 조직으로서, 조직에 관한 별도의 법률은 없으며 다만 각 주(州)별 지방선거법에 의해 선거참여를 보장받는다. 그럼에도 결사체로서의 계속성, 정치일정(예를 들어 선거)에의 참여, 후보자 공천 등의 정치활동을 함으로써 전국정당과 같은 지위를 유지한다. 지역정당은 때로는 전국정당과 연대하고, 아예 전국정당을 배경에 두고 활동할 수도 있다.

독일의 지역정당도 그 활동이 위축되었던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강성한 전국정당의 위세에 눌려 지역정당은 그 영향력을 잠식당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0년 독일 통일과 더불어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지역정당은 다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물론 지역마다 지역정당의 세력에는 강약의 차이가 있으나, 중앙정치와 궤를 달리하는 지역의 사안을 처리하고 지역과 주민에게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현안에 보다 민첩하게 대응하는 등의 강점을 가지고 있기에 그 영향력이 상당하다.

독일의 지역정당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지역 및 지향에 따라 개성이 뚜렷하다. 뮌헨이 주도인 바이에른 자유주(Freistaat Bayern)에서는 1997년에 2035개 지자체 중 1천 개 이상의 지자체에 일종의 지역정당인 ‘자유유권자단체(Freie Wähler)’가 결성되어 활동하였다. 이 조직은 2008년 지방의회선거에서 39.7%라는 놀라운 지지율을 확보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Land Baden-Württemberg)의 2009년 지방선거에서 지역정당은 37.6%의 지지율을 얻었으며, 지방의회 비례의원의 47.55%를 점유했다.

최근 지역정당의 활발한 활동의 예는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독일의 정당법 체계보다 더 느슨한 형태로 정당을 규율하고 있다. 정당에 관한 법률로는 대표적으로 정당조성법과 정치자금규정법이 있는데, 이 법률들은 정치자금의 배분에 관한 것으로 정당의 구조나 조직,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다만 정당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소속 국회의원이 5인 이상이거나 1인 이상이면서 국정 선거에서 2% 이상 득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역정당은 이 정당조성법상의 규정에 규율되지 않으며, 특정 지역 안에서만 한정적으로 활동하는 ‘확인단체’의 조건을 만족시키면 된다. 지방의회선거에서 일정 수 이상의 후보자를 입후보시키고 이에 대한 확인서를 교부받으면 통상 ‘확인단체’로 인정되며 일정한 선거운동을 허용받는다.

일본의 지역정당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84년 결성된 ‘가나가와 네트워크(神奈川ネットワーク)’가 일본 지역정당의 본격적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는 생협운동을 배경으로 시작된 지역활동을 점차 정치결사로 재편하였고, 특히 ‘대리인 운동’이라는 독특한 활동방향을 제시했다. ‘대리인 운동’이란 지역주민이 이웃을 대리해 정치를 한다는 뜻으로서, ‘지역주민’과 ‘이웃’은 사실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성원이므로 지역의 일은 지역주민이 직접 알아서 한다는 원칙이다. 가나가와 네트워크는 전국 지역별 네트워크로 확대되었다.

지바시(千葉市)에는 1991년부터 ‘시민네트워크 지바’라는 지역정당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 안전한 먹거리를 고민하는 생협운동에서 출발한 이 지역정당은 1980년대 말 이후 지역의 환경, 교육, 복지 등 삶에 밀접한 문제들 일체로 관심과 참여를 확장했다. 그 결과 1991년에 이미 ‘주부’ 시의원이 시의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꾸준히 의석을 확보했다.

1995년 이후 일본의 중앙정치가 다원화하면서 지역정당은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오사카 유신회(大阪維新の会)’와 같이 주요 정치인의 후원회 형태로 결성되어 보수회귀적 지역정치를 펼친 지역정당도 생겨났다(오사카 유신회는 2010년 4월 결성되어 특히 2011년 시의원 보궐선거에서 약진했으나 2012년 9월 전국정당으로 전환하면서 일본유신회로 병합했다). 최근에는 2017년 동경 도의회 선거에서 도의회 제1당으로 약진한 동경의 ‘도민퍼스트(都民ファーストの会)’가 유명하다.

이처럼 각국에서 지역정당의 활발한 지역정치를 통해 분권자치의 공고한 틀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 외에도 지역정당이 활동하는 각국의 사례는 많다. 분권자치가 지역적 최소단위의 민주주의를 의미할 때, 지역정당의 존재와 그 활동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각국의 사례를 들어 지역정당의 당위를 살피는 것은 겸연쩍은 일이다. 뒤집어 보면 한국은 가장 기본적인 정치결사의 자유마저 이상한 형태로 제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역정당이 왜 필요한지, 왜 진척이 되고 있지 않은지, 법률상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알아봤다. 그리고 간략하게나마 외국의 사례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렇다면 어떻게 지역정당운동을 시작할 것이냐다. 다음 회에서 이에 대하여 점검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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