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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정치·사람] 지역정당운동토론회 - 정치개혁은 지역정당 건설에서부터 (2019.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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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338회 작성일 22-06-03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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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5일 지역정당운동토론회 영상

윤현식 |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공직선거법 개정에 함몰된 정치개혁의 한계

지난 8월 29일, 국회 정개특위는 신속처리안건, 즉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상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채택하고 이를 법사위로 회부했다. 법사위는 최장 90일의 심사기간 후 늦어도 11월 27일에는 이 개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한다. 본회의에 부의된 법안은 60일의 기간이 지나면 본회의 의결안건으로 자동 상정된다. 이렇게 따지면, 내년 1월 말에는 공직선거법의 개정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공직선거법은 개정될 것인가? 그리고 현재 패스트트랙으로 진행되는 현 법안이 통과되면 ‘정치개혁’은 이루어지는 것인가?

해당 법안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정당지지율에 따른 의석배분을 먼저 한 후, 지역구 당선자를 이 수에서 빼고 남은 수의 의석을 득표비율에 따라 배분한다는 것이다. 전국을 6개 권역으로 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비례대표를 현행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의하여 현재의 거대정당들은 의석이 줄어들고, 소수정당들의 의석은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 기대된다. 이 법안이 개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금 질문, 이 제도가 도입되면 정치개혁은 이루어지는가?

여기서 ‘정치개혁’의 의미를 정리해보자. 오늘날 한국의 상황에서 정치개혁이라고 함은, 첫째 주권자의 직접참여 보장과 그들의 이해가 관철되는 정치풍토 조성, 둘째 완고한 지역주의의 타파, 셋째 거대 양당의 분할구도 해체, 넷째 다양한 정치세력 및 정치신인의 정치입문 보장, 다섯째 삶과 체제를 대상으로 하는 정치활동의 고양이라는 목적을 향하는 것일 터이다. 이러한 목적이 달성될 때 비로소 ‘정치개혁’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실질적 의미에서 정치개혁을 유발할 원동력이 되기에는 매우 미흡해 보인다.

정치개혁과 관련한 본질적인 문제는 법안 안에 있지 않다. 이 법안의 통과를 통해 정치개혁이 이루어지리라고 희망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주체들의 정치활동 방식이 개혁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도 약간 바꾸고 소수정당의 의석이 조금 늘어나는 것을 정치개혁이라고 하진 않는다. 법안의 내용은 이후의 문제이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점은 주권자의 직접적 참여가 정치개혁의 과정에서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이다. 패스트트랙 처리가 의회 안에서는 난장판에 가까운 격돌 속에 이루어졌지만 대중은 그 내용을 잘 모른다. 실제로 대중은 이 과정에서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어떻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왜? 그러한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정당이 뭔데?

정치의 풍토와 환경 자체를 바꾸는 주체는 주권자들이다. 따라서 정치개혁은 주권자들의 직접참여를 통할 때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지금까지는 이런 부분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칫하면 지금의 정치개혁 논의가 주권자와 유리된 채 주권자를 여전히 거수기에 머물게 하는 구태의 반복에 그칠 위험까지도 상존한다. 하지만 원내정당이나 원외정당이나 공직선거법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정도의 의제에 목을 맬 뿐이다. 이들의 노력을 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마치 이것이 다인 듯 달려드는 건 다른 다양한 정치개혁의 의제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동형비례대표제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이를 도입하는 데 들어갈 노력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효과를 볼만한 의제가 있으니 말이다. 그것이 바로 지역정당운동이다.

학계에서 지역정당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진척되어 있다. 정치학계나 헌법학계에서 학문적 연구도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정당법은 지역정당을 창당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전국정당만 존속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당은 중앙당을 두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서울에 중앙당을 두어야 하며(제3조), 5개 이상 광역당부를 설치해야 하고(제17조), 각 광역당부는 1천명 이상의 당원을 두어야 하는 등(제18조) 지역정당을 설립할 여지를 두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지역정당의 창당을 근본적으로 배제하는 제도가 풀뿌리민주주의의 활성화라는 지방자치원칙을 무력화하고, 주권자들의 자발적이고 자주적인 정치활동의 여지를 대폭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 정당설립의 자유, 정당활동의 자유, 당적을 가진 선출직 공무원 출마의 자유 등 정치활동의 자유라는 기본권 전반을 침해하는 것이다.

관련하여 이미 2018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지역정당설립을 원천봉쇄하는 각 조항에 대하여 헌법소원이 제기된 바가 있으며, 지역정당과 직접관련은 없으나 중앙당 수도소재 규정의 위헌성 심판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이 녹색당에 의해 2019년 4월에 제기된 바가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진 않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기존에 이들 정당법상의 규정들을 합헌이라고 결정했었다. 헌법재판소는 대의민주적 기본질서가 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군소정당의 배제가 합목적적이라고 하는 한편, 5개 광역당부를 설치하고 각 광역당부에 1천명 이상의 당원을 두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판단을 하였다.(2006.3.30. 2004헌마246)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현실을 모르는 판단, 정당설립의 자유와 활동의 자유를 매우 협소하게 해석한 판단 등 비판을 받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에서 볼 때, 헌법재판소가 전향적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또한 국회가 정당법의 해당 규정들을 개정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 정당은 이미 전국정당의 안정된 틀 위에서 원내 의석을 확보하고 있기에 굳이 지역정당의 건설을 용인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당에 관한 제반 제도의 운영과 선거사무를 담당하는 선거관리위원회 역시 굳이 지역정당의 창당을 도와줄 동기가 없다. 그렇다면 지역정당운동은 오히려 공직선거법 개정운동보다 더 난망한 정치개혁과제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수가 있다. 하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다.

한국 내에서도 지역정당에 대한 수요는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기초의회 및 기초단체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전국정당이 후보를 공천하는 데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이어졌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특히 기초의회의원후보의 경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당의 자유를 부정하는 한편 당적을 가지고 선거에 출마할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비판을 극복하는 동시에 전국정당의 폭력적 공천권을 거부할 수 있는 장치로서 가장 위력적인 것이 바로 지역정당이다. 2018년 지역정당 관련 헌법소원이 제기된 배경이기도 하다. 당시 ‘새로운 대구를 열자는 사람들(새대열)’이 지역정당을 표방하면서 창당하면서 중앙당 수도설치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한국만 못하는/안하는 지역정당

세계적으로도 지역정당을 불허하는 이러한 형태의 정당제도는 매우 후진적인 것임이 이제는 널리 알려졌다. 바로 인근한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지역정당이 매우 활발하게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일본은 아예 정당법이라는 법이 없다. 결사의 자유 원리에 따라 정당도 결성과 운영과 활동이 보장된다. 그 결과 일본은 지역을 근거로 하는 지역정당이 활발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전국정당과의 공조라든가 지역정당 간의 이합집산이 매우 자유롭다. 각급 선거에 후보를 내어 당선자를 배출함으로써 지역정당 고유의 가치관과 정책을 실현하기도 하며 중앙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수행한다.

독일은 지방선거에만 후보를 내는 정치단체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정치단체는 특별한 법정요건 없이 자유롭게 선거에 후보를 낼 수 있다. 그런데 독일은 연방제 국가로서 각 주가 하나의 독립적인 준 국가의 위상을 가짐에 따라 한국의 지방자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지방선거용 정당이라고 할지라도 그 정치단체가 이후 선거연합 등을 통하여 전국정당으로 전환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브레멘 녹색 후보자 연합’으로 1979년 브레멘 주 의회 선거에 참여한 후 전국정당화하여 독일연방의 연정에까지 참여하게 되는 녹색당(동맹90)이다.

무엇보다도, 지역정당이 필요한 이유는 주권자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다각화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증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의제의 위기가 운위되고 있는 요즈음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직접민주주의가 이야기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대의제 시스템 자체를 우회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대의구조 안에서 더 크고 넓게 주권자가 참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정당은 이러한 의미에서 정치주체로서 주권자를 독려하고 그들이 직접 자신의 정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앞서 살펴보았던 진정한 의미의 정치개혁을 위한 조건이자 정치개혁이 목적해야 할 방향이다.

물론 지역정당은 전국정당의 위성정당, 지역유지들의 이익단체로 전락할 위험이 상존한다. 돈과 네트워크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보수적 인사들에 의하여 지역정당이 조직되고 운영됨으로써 지방자치가 왜곡될 우려도 있다. 주민들의 시민의식, 정치의식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시대와 나라를 떠나 어디에서든 상존하는 위험이다. 이러한 문제를 우려하여 시작도 하지 않았던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예측된 위험은 제거할 방법을 고민해야지 위험하다고 아예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지역정당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가능성은 매우 크다.

지역정당건설운동으로 정치개혁의 새로운 장을 열자

특히 오늘날과 같이 진보정치/좌파정치가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진보정당운동이 쇠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정당운동은 일종의 활로가 될 수 있다. 즉, 풀뿌리 단계에서부터 지역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정치적 공론장을 형성함으로써 정당정치의 저변을 공고히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해당 지역에서부터 진보적/좌파적 가치가 담긴 정책들을 실현하여 적절한 모델을 만듦으로써 진보정치/좌파정치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제고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외연을 넓히고 보다 확장된 정책을 기획하고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일터와 주거, 일상생활과 임노동, 재생산과 생산, 공적관계와 사적관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격지에 존재하게 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진보정당운동을 발 디디고 있는 곳에서부터 형성해보자는 취지에서 지역정당운동은 진보정치/좌파정치를 고민하는 주체들에게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 지역정당의 창당요건 및 이의 제도화, 지역정당건설의 과정 및 운동방식, 선거연합정당 및 지역정당연합 등과 관련된 논의는 추후 다시 진행하기로 하자. 다만, 이번에는 지역정당운동이 결국 정치개혁의 중요한 축이자 가장 효과적인 운동임을 확인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결론적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에 국한된 정치개혁 운동은 한계가 너무나 명확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오히려 공직선거법 개정운동에 들일 노력의 100분의 1만 들인다면, 아마도 정당법을 개정하고 지역정당을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다. 의석 몇 석 늘리는 수준의 정치개혁이 아니라 체제에 대한 도전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의 가치관과 정책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임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개혁을 위하여 지역정당건설운동이 필요하다. 이제 구체적으로 그 가능성을 계산하고 실질적인 활동을 시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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