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사람] 지역정당에 대한 오해 ② ―남은 문제들 Q&A(20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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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당에 대한 오해 ②
―남은 문제들 Q&A
윤현식 _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지역정당에 대한 의아함은 여러 방면에서 제기된다. 지난 칼럼에서 보았던, 지역정당이 기존 전국정당의 지역적 기반을 잠식한다는 우려와 비슷하게 말이다.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자는 것이니 걱정되는 게 당연하다. 지역정당에 대한 우려 몇 가지를 간략하게나마 조금 더 들여다보자.
Q : 지역정당이 기존 보수정당의 지역조직 역할을 하게 되지는 않겠는가?
A :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 보수정당이라서가 아니라 어떤 정당이든 이런 꼼수를 부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꼼수를 부리지 못하게 할 제도적 방법이 있다. 바로 ‘지구당’의 인정이다. 현재는 ‘당협’으로 대체된 ‘지구당’을 부활시키면 된다. 지구당은 과거 “돈 먹는 하마” “지역구 국회의원의 하부조직” 등으로 비난받으며 현행 정당법에서 지워졌다. 지구당이 부활하면 전국정당은 굳이 위성정당 노릇을 할 지역정당을 따로 만드는 꼼수를 부릴 필요가 없다. 단위지역에서 전국정당은 지구당을 앞세워 활동하면 되고, 지역정당은 나름의 활동을 전개하면 된다. 지역정당의 허용과 지구당의 부활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과제다.
Q : 지역유지들 좋은 일만 시키는 것 아닌가?
A : 어차피 지역의 정치활동에서 지역유지들이 배제될 가능성도 없고, 그런 배제가 적절하지도 않다. 지역에서 나름의 기반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지역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데 참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공적 책무를 망각한 채 사익을 위해 정치구조를 왜곡하는 데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지역정당이 더 필요해진다. 지역유지들이 사익을 추구하면서 스스로 지역의 문제가 될 때 해당 지역의 개인들이 이에 대응하기란 매우 어렵다. 개인으로서의 노동자가 사측과 대등하게 맞서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적 해결을 바라는 지역의 주민들이 자체적인 정치결사를 만들어 활동할 때 지역유지들에 의한 지역정치의 왜곡을 저지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Q : 지역이기주의를 강화해 지역갈등을 더 심화시키지 않겠는가?
A : 지역갈등의 진원지가 어딘지는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기존의 보수양당이다. 수십 년 동안 실질적으로 권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는 두 당은 전형적인 지역기반정당이다. 이 보수양당은 정치철학이나 경제철학, 심지어 문화적 양상까지 질적으로 그다지 차이가 없다. 이 두 당을 선명하게 구분 짓게 만들어 주는 것이 다름 아닌 두 당의 지역기반이다. 가장 최근 바뀐 ‘간판명’으로 이야기하자면, 더불어민주당은 호남기반 정당이고 국민의힘은 영남기반 정당이다.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에서 두 당은 중원을 전략적 동반자로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수도권과 경기강원의 표를 끌어 모으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어김없이 지역 정서를 갈라놓는 행위들을 서슴지 않는다. 지역정당은 지역갈등을 부추기기보다 정반대로 이들 보수양당이 조성하는 지역이기주의와 지역갈등 구조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좀 더 먼 미래의 일이 되겠지만, 영남의 지역정당들과 호남의 지역정당들이 연합해 보수양당의 지역기반 자체를 뒤집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Q : 노동정치가 지역정당을 통해 성취될 수 있는가? 노조가 어떻게 지역에서 노동정치를 조직할 수 있는가?
A : 노동정치/진보정치의 복원을 위해 지역정당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할 때 제기되는 문제 중 하나다. 이 문제는 조금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의 근본적 성격과 직결되는 사인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다른 말로 바꾸어보자면 이렇다. 조합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단위노조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지역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지역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즉 지역의 중대 사안에 대한 대책이 그 지역 안에 있는 일부 노동자의 이해와 충돌할 때, 노동정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이래 본격적으로 화두가 되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본질에 대한 제고가 이 대목에서 절실해진다. 사업장 내에서 진행한 조합주의적 투쟁이 개별 사업장의 노동조건과 개별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향상을 가져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거점으로서 노동조합의 성격은 희석되어왔다.
물론 이러한 결과를 유발한 원인이 계급적 통찰을 포기한 노동운동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자본의 공세와 국가의 탄압이 노동운동이 조합주의로 위축되게 한 중요 원인이다. 하지만 언제는 그렇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싸워나가는 것이 ‘운동’ 아니었던가? 바로 그렇기에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세력이 지역정당을 조직하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 공장 담벼락을 넘어선 정치는 과연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그 정치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새롭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과 현장의 갈등을 노동운동이 중심이 된 지역정당이 해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역정당은 지역문제와 현장문제의 실질적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며, 그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며, 그 해결이 조합주의적 관성을 뛰어넘는 것일 때 노동정치/진보정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지역정당에 대해 제기되는 여러 의문들 중 일부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했다. 물론 이러한 답변이 지역정당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하고 지역정당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확신을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정당이 과연 무엇이고, 지역정당의 의의는 무엇이며, 지역정당 운동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어렴풋하게나마 이야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다음번에는 간단하게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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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aborpolitics.org/?p=6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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