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노동·정치·사람] 지역정당 운동을 시작하자! ―누가, 언제, 어떻게?(2021.3.15.)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32회 작성일 22-06-03 04:19

본문

지역정당 운동을 시작하자!

―누가, 언제, 어떻게?

 

윤현식 _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87년 6월 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을 지나면서 한국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있어서만큼은 나름의 틀을 갖췄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절차’는 언제든 왜곡될 수 있다. 그 ‘절차’를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절차’는 민주적이라기보다는 매우 편파적으로 자신의 성격을 드러낸다. 따라서 ‘절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국가 구성원 전반의 이해와 참여가 동반되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특정 계급계층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그 ‘절차’가 만들어졌다면 그 ‘절차’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치적 결과들은 민주적 성과라는 평가로부터 멀어지기 십상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대의기구 구성의 문제다.

여전히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은 보수양당의 기득권을 철벽처럼 방어해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입법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 두 보수양당이 자신들의 기득권에 부합하는 제도만을 만들고, 유지하고, 지키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의 난리법석과 2020년 총선에 염치없이 위성정당을 앞세웠던 두 정당의 행태를 보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현행 정치관계법 자체의 비민주성으로 인하여 국회의 구성과 지방의회의 구성을 비롯하여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대의체제, 대표체제가 실질적 내용에서 민주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지역정당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지역정당을 만드는 일이 사회적 운동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현행 정치관계법은 지역정당의 창당과 정치활동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말로만 ‘풀뿌리 민주주의’를 앞세우고, 명분으로만 ‘분권자치’를 내세우는 기성 정치집단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지역정당 자체는 말살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보수양당의 기득권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 지역정당이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바로 이 보수양당의 방해로 인해 지역정당의 건설은 요원해지며 지역정당을 만들고 지역정치를 활성화하는 일은 ‘운동’이 되고야 만다.

그렇다면 이제 지역정당 ‘운동’은 누가, 언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현장과 지역에서 진보적이며 노동중심적 정치를 원하는 누구나 지역정당에 함께할 수 있다. 지역정당의 주체는 지역에 삶의 기반을 두는 주민이며, 지역의 자치적인 단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이며, 해당 지역에 적을 두는 현장의 노동자들이다. 지역정당의 성격상 기초자치단체 단위의 선출직에 후보를 낼 수 있는 지역공동체의 일원이면 충분하다.

지역정당을 창당하고 공직후보를 내고 지역정치활동을 해야 할 때는 정해져 있지 않다. 기반이 충분히 확보된 지역이라면 2022년 지방선거에 대응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지역정당에 당적을 두고 공직선거를 경유하는 것이 현행법 체제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지역정당운동은 현행 제도에 대한 전면적 투쟁을 포괄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역정당운동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지역정당에 관해서는 현행 법체제에 어떠한 내용도 없으므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바로 그렇기에 무엇을 어떻게 하든 거기에서부터 지역정당의 틀이 잡히기 시작할 것이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틀을 찾아보자.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이후 구성된 장면 정부에서는 인민의 활발한 정치참여를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신문 등 및 정당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1960년 7월 제정된 이 법률은 달랑 5개의 조문만이 있었는데, 그 중 제3조와 제4조가 정당에 관한 규정이었다. 그 규정은 다음과 같다.

제3조 (정당등의 등록) ① 정당 기타 정치적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以下 政黨等이라 稱한다)를 조직하였을 때에는 그 대표자는 5일 이내에 다음 각호의 사항을 기재한 등록 신청서에 대표자의 호적등본과 이력서를 첨부하여 국무원 사무처 사무처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1. 명칭
2. 정강, 정책
3. 당헌, 단칙, 회칙, 규약 또는 이에 준하는 기본규칙
4. 사무소의 소재지
5. 대표자와 중요간부의 주소, 성명
6. 조직년월일

② 정당 등의 지부를 조직하였을 때에는 그 지부의 대표자는 5일 이내에 다음 각호의 사항을 기재한 등록신청서에 이력서를 첨부하여 그 지부 소재지를 관할하는 특별시장 또는 도지사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1. 명칭
2. 사무소의 소재지
3. 대표자의 주소, 성명
4. 조직년월일

③ 전 2항에 게기한 사항 중에 변경이 생긴 때에는 5일 이내에 변경등록신청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④ 국무원 사무처 사무처장 또는 특별시장이나 도지사는 전 3항의 신청서에 형식상 불비가 없는 한 3일 이내에 등록하여야 한다.

⑤ 정당한 이유 없이 전항의 등록을 아니하는 때에는 그 기간 만료일에 등록된 것으로 본다.

 

제4조 (정당 등의 보고) ① 정당 등은 매년 말 현재로 인원수, 활동개황, 회계개황을 익년 1월 말일까지 국무원 사무처 사무처장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② 정당 등이 해체되었을 때에는 5일 이내에 그 사유와 해체 년월일을 보고하여야 한다.

 

이 법률은 현행 정당법과는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중앙당의 소재지를 특정하지도 않고, 지역조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한도 없다. 발기인이 몇 명이어야 하는지, 당원이 몇 명이어야 하는지, 누가 당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도 없다. 이중당적을 금지하는 따위의 내용은 아예 없다. 만일 이 법에 따라 지역정당을 만든다면, 제3조 제1항에만 규율될 뿐이다.

한편, 남한 내에서 군정에 반하는 세력을 원활히 관리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조선 미국 육군 사령부 군정청의 법령 제55호에 따르면, 그 엄혹한 관리통제체제에서도 정당 등록을 위한 최소 당원의 수는 고작 3명이었다. 특히 이 법령 제55호는 그 취지를 볼 때 전국정당이 아닌 지역정당을 우선하여 제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지역정당을 만들기 위해 이미 폐기된 물경 한 갑자 이전의 법률을 원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없던 틀을 새로 구성할 때, 과거의 전례를 참조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법률들과 정당법의 연혁을 고려할 때 지역정당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틀은 다음과 같이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최소 당원의 수다. 정당은 정치 강령과 정책을 공유하는 정치결사이다. ‘결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이 최소 2인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므로 1인이 당원인 정당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미군정 법령 제55조는 3인 이상이면 정당등록의 요건이 된다고 했다. 한편 한국의 정당법은 2004년 개정 전까지 지구당 제도를 두고 있었다. 이 지구당이 바로 지역정당의 단위와 거의 겹치는 기존 전국정당의 지역조직이다. 당시 지구당은 30인 이상의 당원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구 정당법 제27조). 이렇게 보면 지역정당을 등록하기 위한 최소 당원의 수는 이 범위 안에 있으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현행 정당법은 창당을 위한 발기인의 수와 당원의 수를 따로 정하고 있다. 지역정당에 굳이 전국정당에 해당하는 규정을 적용할 이유는 없으나, 현행 제도의 절차를 따진다면, 지역정당 창당을 위한 발기인 수는 3인 이상으로 하고, 지역정당 등록을 위한 당원의 수는 10인 이상으로 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지역정당을 창당하고자 하면, 일정한 당원을 규합한 후 해당 지역의 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 등록신고 절차를 진행할 것이다. 당연히 현행법에는 이 신고를 받아 등록처분을 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규정도 없기 때문에 신고는 반려될 것이며, 등록은 실패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창당등록신청반려처분을 취소할 것을 이유로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행정소송의 과정에서 행정법원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거나 직접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이 과정들을 통해 지역정당에 대한 여론의 환기는 물론 법제의 모순과 문제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현행 정당법을 합헌으로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경향에 따를 때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에서 정당법을 위헌으로 하고 지역정당이 헌법의 원리에 부합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변했고, 더 이상 과거 권위주의정권이 만들어놓은 비민주적인 정치구조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성숙되었다고 볼 때, 매우 긍정적인 전망이 가능하다고 본다.

지역정당에 관한 별도의 입법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현행 정당법처럼 과도하게 정당의 구성과 활동에 대해 규제로 일관하는 법률이 만들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지역정당을 규율하는 입법의 과정에서 현행 정당법체계도 그 뿌리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지역정당을 허용하되, 전국정당의 지구당도 허용하게 된다면 보수양당의 이해에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지역정당의 운동은 단지 지역정당을 만들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서, 한국 정치의 근본을 건드리는 중대한 운동으로 승화하게 된다.

기득권에 도전하는 정치운동, 그것도 제도에 도전하는 동시에 제도를 개혁하려는 운동은 고단한 장래를 예고한다. 하지만 노동정치/진보정치가 운동 없이 얻은 것이 무엇이 있었던가? 우리의 한 걸음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길이었다. 지역정당운동은 그 길 중의 놓칠 수 없는 한 갈래이다. 기존 정치구조를 넘어선 새로운 정치지형을 창출하고, 답보상태에 있는 노동정치/진보정치를 혁신할 방법으로써 지역정당운동은 그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지역정당 운동을 시작하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소 : 03395 서울시 은평구 진흥로 143 연세빌딩 5층
메일: localpartynet@gmail.com

⌂ 노동·정치·사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