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사람] ‘지역과 현장’은 이제 옛말이 되었나?(202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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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현장’은 이제 옛말이 되었나?
유검우 _ 노동도시연대 대표 / 노동·정치·사람 운영위원
진보정치의 혁신 방안으로 지역과 현장을 강조하는 주장이 나온 지도 십수 년이 지났다. 당시 혁신 대상인 진보정치는 민주노동당의 정치였고, 이를 주장한 사람들은 대개 진보신당 혹은 녹색당을 만들어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복잡한 이론을 근거로 대지 않더라도 지역과 현장이라는 일상에서 운동을 확대하고 재생산한다는 아이디어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당연히 필요하지 않나 싶은 일이다. 그러나 이 당연해 보이는 이야기를 막상 실현하기는 쉽지 않았다는 걸 오늘날의 상황이 보여준다.
다양했지만 아쉬운 지역에서의 진보정치 운동
시도는 다양했다. 공간을 중심으로 정치지향을 지역에 확산하고자 했던 민중의 집 운동, 매체를 통해 삶터를 진보적으로 조명한 지역 미디어·언론 운동, 생산과 소비를 자본의 주판알이 아닌 공동체의 원칙으로 재구성한 협동조합 운동, 흩어져있는 개인들을 지역 내 공통 관심사로 묶어내려던 다양한 종류의 지역 공동체 운동 등. 목표 설정이 명확한 경우엔 꾸준히 운동을 이어오지만, 목표가 모호했거나 사라지면 활동이 위축되었고, 최악의 경우엔 최초의 지향마저 잃고 기득권 정치에 흡수되었다. 이러한 시도들에 대해 공통으로 아쉬운 점을 짚자면 ‘노동’ 혹은 ‘현장’의 역할 부재다.
물론 지역사회 노동운동을 표방한 ‘희망연대노동조합’이나 지역 거점 운동에 노동조합이 함께하는 경우 등은 있었으나, 이는 일련의 시도 중에서도 소수였다. 분명 지역과 현장을 동시에 강조했지만, 실제론 현장을 주체로 세우지 못하거나 혹은 기존의 조직노동에 기대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진보정치는 어째서 지역과 현장을 이어 변혁의 주축으로 삼는 데 실패했는가?
선거, 선거, 선거…
아쉽지만 지난번에 이어 다시 ‘정당의 한계’를 이유로 들어야겠다. 정당을 중심에 둔 진보정치의 변혁 노선은 ‘선거’라는 현실적 조건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자원이 말라가던 민주노동당 이후의 진보정치는 매번 다가오는 공직선거에 도전하는 동시에 운동의 혁신도 이뤄야 했다. 평시에는 앞서 언급한 일련의 시도들을 이어가다가도 공직선거 국면이 되면 당장 한 표라도 더 끌어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런 처지는 세 양상으로 귀결됐는데, 일단 대다수 유권자의 거주지역과 근무지역이 다른 수도권에선 노동을 정치의 매개로 삼기를 포기했고, 비수도권에선 기존에 존재해온 현장의 정파적 관계 조정에 끌려다녔다. 이 둘은 그나마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지역에 한정된 이야기고, 그렇지 못한 지역에선 다른 지역 선거에 역량을 투입하며 정치 운동에 대한 의지를 소진해갔다. 2008년 이래 이런 과정을 총선 세 번, 지선 세 번, 재보궐까지 치자면 거의 매년 반복해 온 것이다.
그렇다고 정당의 외피와 선거에 대한 직접대응을 배격했다면 지역과 현장을 주체로 하는 변혁이 가능했을까? 이건 어리석은 물음이다. 애초에 정치를 하지 않고 사회를 바꿀 수 없을뿐더러, 정당과 선거가 정치참여를 위해 가장 유효하며 사회적으로 합의된 수단임을 부인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정치적 지향을 잃은 운동이 기득권 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한 수많은 사례를 보더라도 진보정당의 존재는 선택지 확보란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
지역정당이란 돌파구
그러나 상기했듯 기존의 진보정당들이 지난 세월 걸어온 길과 지금 걸어가는 길을 볼 때, 여전한 한계에 부딪힐 것이 자명하다. 한계를 극복할 의지를 잃어버린 쪽이든, 우직하게 도전하는 쪽이든, 우회하는 쪽이든 여태까지와 다른 결과를 낼 묘수가 없다는 게 지금 진보정치가 처한 우울 아니겠나. 그렇다면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해오던 일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
노동·정치·사람은 ‘지역정당’으로 현 상황을 돌파하기로 했다. 기존 진보정치에 한 발이라도 걸쳤던 사람들 대부분이 지역 정당이란 네 글자에 가지는 거부감이 있다. 이런 거부감에 대한 대답은 이미 윤현식 정책위원이 지난 연재칼럼을 통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으니 꼭 읽어보십사 부탁드리며, 여기서는 노동·정치·사람이 펼치려는 지역 정당 운동이 어떻게 기존 진보정치 운동의 한계를 넘어 ‘지역과 현장’을 정치의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을지 얘기해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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