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사람] 지역정치 활성화의 첫걸음, 지역정당 건설 ―지역정치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20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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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치 활성화의 첫걸음, 지역정당 건설
– 지역정치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윤현식 _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민주주의의 핵심은 참여다. 민주주의의 특징은 주권자가 사회공동체 구성원 모두라는 점에 있다. 주권이 어느 한 사람에게 독점되어 있거나 특정의 몇몇에 과점되어 있지 않은 것이 민주주의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안마다 주권자들이 개입하고 이해관계를 드러내며 결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면서 사안 해결의 과정을 어느 한 사람의 독단에 맡긴다거나 몇몇 주요 인사들에게 전권을 부여한다면 민주주의는 그저 허울에 불과하다. 즉 주권자의 참여가 충분히 이루어질 때 민주주의는 그 가치를 발휘한다. 정치학자인 레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도 민주주의 사회의 전제조건으로 ‘참여’를 특히 강조한다.
그런데 현대국가에서 구성원 전부가 동일한 책임과 이해를 가지고 사안에 직접 개입하고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의제라는 양식이 민주주의의 관철을 위한 일반적인 장치로 기능하게 된 이유다. 반면 공동체의 규모가 작아질수록 내부의 이해관계가 단순해지며, 참여의 절차와 과정이 간단해진다.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직접 반영될 수 있고 그 효용이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직접적인 개입의 유인도 훨씬 높아진다. 참여의 여지가 국가단위보다 광역단위, 기초단위로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그러나 칼럼 2편에서 보았듯이, 지역 사안에 대한 주민들의 직접 참여가 보장되는 지역정치가 정체되어 있다.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에 복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치가 지역정치를 고사시키는 폐단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지역갈등이다. 거대 전국정당인 보수양당이 한국의 지역을 동서로 분할 점유하여 지역감정에 근거한 정쟁을 벌인다. 보수양당이 지역을 중앙정치의 패권쟁투를 위한 자원으로 동원하면서 정작 지역의 자주적인 정치활동은 억눌려 왔다. 이 모순 속에서 지역정치가 고사되고 말았다.
지역정당 활성화에 제기되는 반대 논리 중 하나도 ‘지역감정’이다. 그러잖아도 지역감정이 심화되어 있는 현재의 정치 상황에서 지역정당이 생기면 이를 더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그동안 전국정당들은 지역감정을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누려왔다. 이러니 전국정당 소속의 국회의원들은 현재의 지역분할 구도를 해체할 필요를 못 느낀다. 당연히 현행 정치관계법을 뜯어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중앙집권적 정치를 하도록 보장해주는 현행 정치관계법을 근본부터 고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역정치가 고사한다는 말은 지역이 고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질서는 ‘서울’을 중심으로 돌고, 정치는 ‘서울’과 그 인접 수도권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것으로 한정되며, 지역은 중심을 위해 동원되는 자원공급처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치에 의해 조장된 지역의 부정부패가 만연한다. 지난시기 4대강 사업이나 진주의료원 폐쇄, 부산 엘시티 비리 등 부패·비리 사건들은 중앙정치의 이해관계에 지역이 휩쓸린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여기서 지역 자체의 입장과 지역 주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한 의사결정 등은 무시되거나 왜곡된다. 일찍이 강준만 교수가 지방을 ‘내부식민지’로 규정하며 한국을 지배-피지배 관계에 있는 두 개의 나라로 설명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중앙정치판에 휩쓸려 지역이 스스로 생존을 결정할 방법을 잃어버리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가장 위협적인 현상은 소위 ‘지방소멸’인데, 중앙집권적 행정계획에서 나오는 소위 ‘지방 살리기’는 요식행위로 전락하기 일쑤다. 주로 지역에 기반하는 농업, 어업, 임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지만, 언제나 정부의 대책은 그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각 지역의 특수성과 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 전부를 중앙정치가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러한 모순구조를 해소할 방법은 중앙정치와 ‘견제’의 관계에 있는 지역정치를 활성화하는 것뿐이다.
지역정치의 활성화를 위한 첫걸음이 지역정당의 건설이다. 중앙집권적 정당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의 다양성과 특수성에 근거한 지역정치를 수행하는 주체의 형성이 필요하다. 전국정당 특유의 내리꽂기식 정치를 벗어나 주민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유인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전국 사안의 지역의제화와 지역 사안의 전국의제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다 정치화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국정당과 대등하면서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유지하는 조직이 요구된다. 지역정당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좋은 정치조직이다.
2019년 4월 30일, 녹색당 충남도당은 중앙당을 서울에 두도록 강제하는 정당법 3조 등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전국정당인 녹색당에서 제기한 이 헌법소원은 지역정당의 건설과는 별개의 취지인 듯 보인다. 하지만 이미 정당법 3조에 대한 헌법소원은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최근에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대구 지역의 지방선거 대응조직인 ‘새로운 대구를 열자는 사람들’이 관련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직까진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의미 있는 결정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제도들이 지역정당 건설을 막고 있는가? 다음 편부터 본격적으로 제도적인 문제점들을 짚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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