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사람] 무엇이 지역정당 설립을 가로막는가? ―정당법② : 돈과 사람이 없다면 당 만들 생각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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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지역정당 설립을 가로막는가?
– 정당법② : 돈과 사람이 없다면 당 만들 생각도 말라!
윤현식 _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지역정당은 기본적으로 기초단위에서 지방정부 및 지방의회를 구성하는데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예를 들면, 기초지자체인 은평구에 ‘은평시민당’이라는 지역정당이 있다면 이 지역정당은 은평구청장 선거와 은평구의회 의원 선거에 당의 이름으로 후보를 출마시킬 수 있는 것이다. 지역정당은 이처럼 기초단위에서 공직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정당의 사무소는 해당 지역 안에 있으면 되고, 어차피 다른 지역 선거 혹은 전국단위 선거에 출마할 것이 아니므로 다른 지역에 당부(黨附)를 둘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등록의 요건으로 중앙당을 수도에 두어야 하고 5개 이상의 시 · 도당을 두어야 한다. 중앙당을 서울에 설치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선 연재물 5편에서 논했으므로 그 외의 문제들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중앙당을 서울에 두어야 한다는 규정과 마찬가지로 현행 정당법에서는 시·도당 역시 선택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다. 정당법 제17조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정당은 5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한다.”
은평구에서만 공직선거에 참여하고자 하더라도 등록정당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서울뿐만 아니라 예컨대 부산, 대전, 광주, 대구에도 광역당부를 두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연히 등록이 거부된다. 이 규정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에서 지역정당이 허용되지 않음을 선언하는 규정이다. 정당법은 이 요건들을 갖추지 않은 정당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제한규정은 정당법이 제정되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최초 정당법 제정 당시에 이 규정은 지구당 설치 규정이었다. 당시 규정에 따르면 정당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총선 기준 지역선거구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지구당을 설치해야 했다. 당시 지역구는 131석이었으므로 44개 지구당을 두어야 했던 것이다. 한편 지구당은 5개 광역 시도에 분산되어야 하며 각각의 지구당은 50명 이상의 당원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박정희 정권은 이 규정을 더욱 강화했는데, 1969년 1월 개정에 따라 지역구 총수의 2분의 1의 지구당을 설치하도록 하고 각 100명 이상의 당원을 가지도록 하였다. 한편 당시 선거법은 국회의원 입후보 자격을 정당인에 한정함에 따라 총선에 출마하고자 하면 무조건 정당에 입당해야 했다. 정당등록요건을 강화하고 선거참여도 정당에 한정함으로써 더욱 강력한 정치활동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전두환은 정권찬탈 이후 이 규정을 상당한 수준으로 완화했다. 지구당의 수도 지역선거구 총수의 4분의 1로 줄였으며 당원 수도 30인 이상으로 대폭 하향했다. 이후 정당법 개정에서도 이러한 기준완화 현상은 이어졌다. 그런데 오히려 21세기 들어와 이 규정이 애매하게 강화되고 말았다. 2005년 개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규정이 생긴 것이다. 현행 정당법 제18조는 각 시도당은 1천 명 이상의 당원을 가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리해보면, 한국에서 정당을 만들기 위해선 적어도 5천 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하고 5개 광역시도에 사무실을 둘 수 있을 정도의 자본이 있어야 한다. 중앙당은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데 그것도 서울에만 둘 수 있다. 서울을 근거로 하지 않는 지역정당은 현행 정당법 아래에서는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규정을 둔 정당법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케냐나 캄보디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정당법에는 당원 수를 일정하게 가지고 있을 것을 요구하는 규정이 있다. 카자흐스탄 정당법에는 전국적으로 4만 명 이상의 당원을 두어야 하고, 수도를 비롯한 주요 도시별로 6백 명 이상의 당원을 두어야 한다는 강력한 규정이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이런 규정을 가진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구나 당원 수의 하한을 제한하는 규정을 둔 나라라고 할지라도 지구당이나 시도당을 얼마나 두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을 가진 나라는 찾을 수 없다.
특히 OECD국가들 중에는 이처럼 시도당 설치규정과 같은 규정을 둔 정당법을 가진 나라가 아예 없다. 우리와 유사한 정당법 체계를 가진 독일이나 스페인 역시 그렇다. 이들 국가의 정당법에는 시도당이든 지구당이든 어떤 형식을 가진 당부를 국가가 강제하는 규정이 없으며 당원 역시 마찬가지다. 유독 한국만이 돈 없고 사람 없으면 아예 정당을 만들 생각도 말라고 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판국이다.
지역정당 자체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진 사례는 없으나, 정당법 관련 헌법소원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지역정당의 설립에 방해요소가 되는 각 규정들에 대하여 합헌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제25조의 규정은 이른바 “지역정당”을 배제하려는 취지로 볼 수 있고 제27조의 규정은 이른바 “군소정당”을 배제하려는 취지”라고 파악하면서도, 이들 규정이 “특정지역의 정치적 의사만을 반영하려는 지역정당을 배제하려는 취지가 헌법에 어긋난 입법목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2004헌마246). 입법부의 입장을 존중하는 소극적 헌법해석인 동시에 지역정당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결정이다.
정당법은 이외에도 문제가 되는 규정을 다수 가지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대표적인 몇 가지 규정을 더 짚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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